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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토막상식 이야기

어릴적 학대당한 것이 면죄부가 아니다?

by 인터넷떠돌이 2016. 1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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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이번 포스팅에서는 한국 skeptic vol8에 정말 흥미로운 기사가 하나 있어서 이를 소개하면서 포스팅을 진행할까 합니다.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상식 중에 하나인 [학대받고 자란 아이가 커서 자기 아이를 학대한다]라는 것이 아주 유명합니다. 하지만 한국 스켑틱에서는 이에 대해서 반박을 하는 기사를 하나 싣고 있어서 정말 흥미롭습니다. 기사에서는 이에 대한 반박을 위해서 정말 간단한 자료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1970년대 위덤과 그 연구팀은 법원 기록을 모아 학대를 받거나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방치된 11세정도 되는 어린아이 908명을 추적했다고 합니다. 일단 기사의 이 대목을 읽어 보면서, 정말 연구하나 각을 잡고 제대로 작정하고 시작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튼 모든 실험에는 대조군이라고 해야 할까요? Control에 해당하는 그룹이 필요한데, 그걸 위해서 이 908명의 아이들과 같은 인종, 같은 동네, 성별 그리고 유사한 사회경제적 지위에 있는 아이들 또한 추적했다고 합니다. 


이 대조군에 해당하는 아이들이 얼마나 되는지는 기사에는 나와있지 않지만, 그래도 우리 주변에서 법원에 신고가 들어갈 만큼 학대받는 어린아이들이 훨씬 적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대조군으로 설정된 어린아이 900명 이상은 어렵지 않게 설정할 수 있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일단 연구결과에서 어느정도는 위에서 말한 [나쁜 가정 환경]이라고 해야 할까요? 학대당한 어린아이들이 청소년기에 폭력 범죄를 저지를 확율이 높기는 높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대조군의 아이들이 청소년기에 폭력범죄를 저지른 비율이 14%였는데 비해서, 학대당한 아이들이 청소년기에 범죄를 저지를 확율은 21%로 둘의 차이가 그리 크지 않다고 기사는 말하고 있습니다.


글쎄요. 제가 보기에는 이게 통계학적으로 유의차가 나오지 않았다는 의미인 것 같기는 합니다만, 이 7%의 차이라는 것이 100명 중의 7%라면 7명이고, 1000명중의 7%라면 70명이라는 의미가 됩니다. 이게 단순한 통계학적 유의차가 없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영향이 전혀 없다고는 해석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무튼 기사로 돌아와서, 연구는 놀랐게도 이 908명의 아이들이 평균 연령이 29세가 되어서 자녀를 갖게 됨에 따라 연구 그룹을 또 나누어서 이 3세대가 되는 아이들의 자료도 수집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스켑틱의 기사에서는 정확한 자료가 나오지 않았지만, 학대당한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서 낳은 아이들을 관찰하고, 2010년이 되는 해에 이 연구가 마무리가 되었다고 합니다. 마무리하면서 결론에 [신체적 학대가 세대 간에 대물림 된다는 증거는 거의 없다]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합니다.


우리의 일반적인 생각과는 다른 결과가 나왔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이 연구 하나만 가지고 전체적으로 적용하기는 곤란한 감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기사에서 나온 바와 같이, 이런 학대의 상처를 극복하는 방법으로는 [운동이나 음악과 같이 자존감을 높이는 경험]이라는 것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자존감을 높이는 경험]이라는 항목에 주목을 하였습니다. 일반적으로 학대를 당한 아이들의 행동에서 엄청나게 위축이 되어서 자존감이라고 해야 할까요? 일종의 자기 자신을 지켜주는 자존심이라고 해야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이런 마음에 심각한 상처를 받게 되면 사람이 폭력적으로 변할 수가 있는데, 이러한 상처입은 자존감을 회복하는 계기가 있다면? 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스켑틱의 기사에서는 또 다른 이유로 언급한 것이 바로 [주변에 있는 다른 어른이나 또래 친구나 다른 형제의 관심]이라고 말합니다. 이 대목에서 드는 생각이, 비록 부모가 아이에게 차지하는 비율이 크기는 하지만, 그 부모라는 비율이 그렇다고 해서 절대적이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저자가 언급한 것 처럼 이들의 어린 시절 받은 상처가 결코 가볍거나 극복하기 쉽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오히려 사회는 이렇게 학대로 인해서 상처받은 아이들이 극복할 수 있도록 더 따뜻한 관심과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기사에서는 이와 비슷한 다른 연구결과를 하나 더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 연구결과의 내용은 간단합니다. 한국에서는 조금은 생소한 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서구권에서는 [성적학대를 당한 사람이 성범죄자가 될 위험이 높다]라는 말이 있다고 합니다. 이에 대해서 호주의 한 연구팀은 성적 학대를 1번이상 하거나 성범죄를 저지른 이력이 있는 38282명의 남성을 조사했다고 합니다. 


이 성범죄자 3만 8천명이라는 수치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경악할 만하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습니다만, 어쨎든 호주 연구팀이 연구를 위해서 표본을 많이 수집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튼 연구팀의 결론은 너무나 간단했습니다. [성범죄자의 4%만이 성적으로 학대당한 경험이 있다]라는 것으로, 위에서 말한 [학대당한 어린아이가 커서 학대를 한다]와 어떻게 보면 비슷하기는 하지만 다른 면이 있는데.... 결론은 이겁니다.


[어릴적에 범죄 피해를 당한 아이가 커서 범죄를 저지른다]라는 생각이 [틀렸다]라는 겁니다. 이 결과를 보면서 위에서도 말했지만, 상처받은 아이들의 회복을 위해서 지원하는 것이 가장 현명하며, 아이들은 이를 충분히 극복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이 기사의 결론입니다.


그럼 어째서 이런 편견이 생기게 된 것일까요? 

이 기사에서 저자가 지적하는 가장 큰 원인으로는 [어릴적 상처를 극복한 어른들]은 문제를 일으키지 않기 때문에 [치료시설]이나 [교도소]에 들락거리지도 않으며, 이런 사연을 털어놓을 일도 드물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아동학대의 후유증]이 크다는 것은 알고는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아이가 살아가면서 마주할 주변 환경에 따라서 극복이 가능하고, 상당히 많은 수의 아이들이 극복가능 하다는 것을 이 기사를 통해서 알 수가 있었습니다. 결국 다시 말하지만 이 기사를 읽고나서 제가 내리는 결론은 다소 엉뚱하기는 하지만 한가지 분명합니다.


[어린시절 상처는 어른이 되어서 저지른 범죄의 면죄부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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