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요즘 4차 산업혁명이다 뭐다 해서 '인공지능'에 대해서 상당히 논란도 많고, 위험성을 경고하는 목소리도 많습니다. 이건 어제 오늘의 문제도 아니기도 하거니와 상당수는 인공지능의 '반란'같은 것을 우려하고 있기도 합니다. 때마침 '한국 스켑틱'의 vol 11에서는 이에 대해서 심도있게 논의를 하였는 [인공지능의 위협은 실재적인가]라는 기사가 있기에 이를 읽고나서 리뷰해 보고자 합니다.


기사는 3개의 기고문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첫번째 글은 [왜 인공지능을 두려워해야 하는가]라고 매튜 그레이브스(Matthew Graves)란 사람이 기고한 글로써, 인공지능의 위험성에 대해서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공지능은 위협이 될 수 없다]라는 마이클 셔머(Michael Shermer)의 글과 [인공지능은 시뮬레이션일뿐 합성이 아니다]라는 피터 카산(Peter Kassan)의 글에서 반박을 한다고 해야 할까요? 인공지능의 위험에 대해서 반박하는 글로 구성이 되어 있었습니다.




첫번째 기고문인 [왜 인공지능을 두려워해야 하는가]라는 글에서 저자는 먼저 인간의 지능은 '태아의 머리'가 물리적인 제약인 '산도 birth canal'을 통과해야 하는 문제가 있어서 '제약조건'이 있지만, 인공지능에게는 이런 '제약조건'이 없음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인공지능의 특징 때문에 2050년까지 '사람이 하는 대부분의 일을 최소한 보통 사람만큼 잘 수행할 수 있을' 가능성을 언급합니다.



일단 기사는 '보편적 인공지능(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 AGI)'의 개발에 대해서 언급을 하면서 다소 이해하기 힘든 전문용어를 너무 많이 상요해서 이해가 어려운 면이 많았습니다. 다만 저자는 이 글에서 우선 인공지능에 '의욕(ambitious)'을 배재할 수 없으며, 이 '의욕'이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불러온다는 가능성에 대해서 언급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컴퓨터에게 '의욕'이 무슨소리인지 부터 '이해가 안되는'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저자는 주장하고자 하는 것은 아마 '지치지 않고 스스로를 발전시키는' 인공지능이 '인간의 가치관'을 학습하지 않은채 ''이 되는 것을 우려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자가 이러한 부분을 알기 쉽게 글을 전개했으면 좋지 않았을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듭니다.



결국 저자는 염려하고 있는 것이란 글의 말미에서 언급했다 시피, 인간이 오류-인공지능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서 손을 쓸려고 하는 순간이 '이미 늦은' 경우에 대해서 걱정을 하고 있으며, 미리미리 이런 위험에 대해서 걱정을 하고서 '대책'을 마련하는 연구를 할 것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 글을 다 읽어본 독자로서는 글을 좀 더 알기 쉽도록 풀어서 쓰고, 전문용어의 사용을 줄였으면 어떻까 했습니다.




두번째 글을 기작 하기를 가지가지 지구 전체적으로 산적한 문제점을 열거하면서, 여기서는 '폭주하는 인공지능'에 대한 '두려움'에 촛점을 맞춘다고 언급을 하면서 글이 시작됩니다. 그러면서 기고문은 '인공지능 비관론자'들의 주장을 소개하면서, 먼저 잘못된 주장인 '사악한 인공지능'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반박을 합니다. '인공지능은 사악하다기 보다는 도덕관념이 없다고 보아야 한다' 라고 주장을 하면서, 인간을 비롯한 그 어떤 것에도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언급합니다.



뭐라고 해야 할까요? 일단 인공지능은 '감정'이 없어서 모든 것을 '계산' 해야만 행동을 할 수 있습니다. 거기다가 인공지능의 또 다른 문제로 저자가 제시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인공지능은 '의식aware'가 없다는 것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알파고가 바둑에서 이겨도, 그 어떤 '기쁨'같은 '감정'도 없고, 심지어 자기가 '바둑'을 두는지도 인식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서 저자는 다음과 같은 말을 주장합니다. [따라서 이와 같은 감정을 갖도록 진화하기 전에는 인공징능이 우리를 상대로 적대적 행동을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므로 사악한 컴퓨터에 대한 두려움은 근거가 없는 두려움이란 것이다.]



한마디로 인공지능이 무슨 '적대적인 감정'이 있어서 반란을 일으킬 일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불안감이 가시지 않을 사람을 위해서 저자는 인공지능이 문제를 일으키는 시나리오에서 '만약if'가 많다는 것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1)만약 인간과 동등한 인공지능을 개발하고

2)만약 인공지능이 자신의 작동원리를 완전히 이해하고

3)만약 인공지능이 인간을 능가할 정도로 '스스로'를 개조하고

4)만약 그 초인공지능이 어쩌다가 악의를 품고 자원을 소비하기 시작하고

5)만약 우리가 그 인공지능을 멈추는 데 실패한다.


즉, 이 시나리오에서 만약만 5번이나 언급이 되었고, 이 5번이 모두 연속으로 일어나야 한다는 것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일어날 개연성이 낮아도 너무나 낮다는 의미가 됩니다.


마지막 기고문은 제목부터 인공지능은 '시뮬레이션'일 뿐 실제가 아니라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인공 artificial'이라는 단어에는 '합성 synthetic'이라는 의미와 '모사 simulated'라는 두가지 의미가 있다는 사실을 언급하면서 기고문은 시작을 하고 있습니다. 위 사진처럼 '모사'란 아무리 뛰어나도 '비행 시뮬레이션'이지 진짜로 '비행기를 조종'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저자는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서 인공지능은 '합성'이 아니기 때문에 '자연적 지능'과 물리적, 기능적으로 동일한 것이 아니라는 주장을 세번째 기고문의 저자는 하고 있습니다. 이게 왜 인공지능이 '위협적'이 아닌가 라는 말이 되는가 하면, '모사'란 일부 성질이 비슷하지만 전부는 아닌 것처럼, 인공지능도 결국 인간의 지능을 '따라'하는 것이지, 진짜로 인간이 '지능'이라는 것을 만든 것은 아니라는 의미가 됩니다.



세번째 기고문에서 저자는 이해를 돕기 위해서 '유리로 만든 가짜 다이아몬드'에 해당하는 '모사'와 '수열합성 방법으로 만든 인조 다이어몬드'에 해당하는 '합성'을 예시로 들었습니다. 아무리 정교하게 유리로 다이어몬드를 만들어도, 이게 탄소가 결정을 이루어서 만들어진 다이아몬드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런 예시는 피부로 체감이 되는데, '자연적 지능'과 '인공지능'에 대해서는 피부로 체감이 되지 않는 면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자는 간단한 예시로 '언어적 지능(linguistic intelligence)'에 대해서 언급을 하면서, 이에 대비가 되는 ''언어적 지능(pre-linguistic intelligence)에 대해서 언급을 하면서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기사에서 그렇게 자세하게 나오지 않은 점은 유감스러웠지만, 인류가 '언어'라는 것을 쓰기 전에도 '지능'이라는 것이 존재했으며, 대다수의 동물들도 '언어'라는 것이 없어도 존재하는 '지능'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인공지능'은 결국 '언어'에 속박되어 있지, '비언어적 지능'에 대해서는 다룰 수 없는 한계가 존재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 비언어적 지능을 다룰 수 없다는 문제때문에 '인공지능'은 인간의 '자연적 지능'을 '합성이 아닌 모사'한 것에 불과하다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다만 기고문 자체에서 나오는 아쉬운 점이라면, 이 '비언어적 지능'에 대해서 조금 더 상세하게 설명했으면 어떠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도 쉽지 않은게, 안 그래도 기고문의 길이가 긴 편인데, 너무 길이 길어지는 부작용이 보이기도 하였습니다. 


이것으로 한국 스켑틱 vol 11에서 다루고 있는 [인공지능의 위협은 실제적인가]라는 기사를 리뷰해 보았습니다. 이 3가지 기고문이 기고된 잡지의 성격을 생각하면, 상당히 '회의적인' 시선으로 본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공지능의 위험성이 있기는 하지만, 각종 대중매체-매트릭스나 터미네이터 시리즈 처럼 위험한 것은 아니다라는 것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다만 한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3가지 기고문의 저자들이 관련된 분야의 전문가가 되어서 글의 전문성이 살아나기는 했지만, 너무 어려운 전문용어를 많이 사용해서 일반인에게 자칫하면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으로 비추어 질 수 있다는 점은 확실히 감점요인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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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책덕후 화영 2017.09.14 12:21 신고

    음... 제 관점에서 봤을 때 인공지능은 위험성이 어느정도는 있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감정이 없다는 게 사회적으로 부정적인 결과를 불러오지 않는다는 전제가 잘못되었습니다. 사회공헌의 현장에서는 좋은 의도로, 착한 의도로 하는 일이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가 정말 많습니다. 애초에 그런 부분을 해결하는 게 사회공헌 전문가들이 진짜 해야 할 일입니다.

    일례로 사회공헌 분야가 돈이 안된다는 걸 알아도, 보람을 느낄 여지가 많기 때문에 착한일을 하고싶어하는 사람은 정말 많습니다. 그래서 이 분야는 항상 하고싶어하는 사람으로 넘쳐나고 그 결과 사회공헌 분야 종사자들의 임금이 낮아져서 최저임금 정도밖에 못버는 사람들이 정말 많습니다. 문제는 임금이 너무 낮아서 자기 자신의 자립도 안되는 수준인데 남의 자립을 도와준다는게... 이 문제 때문에 저도 한때 사회적경제 분야에 종사하려고 준비했었지만 포기하고 IT분야로 회귀했습니다. IT쪽에서도 임금체불 당해서 나왔다는게 함정이긴 하지만...

    요즘 이슈가 되고 있는 싸이코패스, 소시오패스는 뇌과학적으로 볼 때 사람을 해칠 감정을 느끼고 거기에 희열을 느끼는 사람이 아니라 감정을 느끼는 뇌의 영역에 문제가 있어서 감정을 못느끼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감정을 못느끼는 것의 결과가 보통 사회악적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사회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 사례를 봤을 때 감정을 못느끼는 것은 사회악이 될 수 있습니다. 오히려 그 확률이 꽤 높은 편이라고 봅니다.

  2. 그렇군요.
    하긴 악의는 없는데, 멈추는 스위치가 없는 경우가 문제라고 언급은 합니다. 다만 어디까지나 악의라고 해야 할까요? 대중매체의 이런 AI는 안 나온다는 이야기지만, 사이코패스와 소시오패스에 대해 이야기하면 두번째 기고문 저자가 난감해 할지도요.

안녕하세요?


얼마전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구 온난화를 막기 위해서 만들어진 [파리 기후 협약]을 탈퇴해서 사람들의 관심을 또 다시 받게된 것이 지구 온난화인데, 공교롭게도 한국 스켑틴(Skeptic) vol10.에 싣려이ㅣㅆ는 지구 온난화에 관련 기사의 저자 이름도 '도널드 프로세로(Donald Prothero)'라고 성이 다르지 이름은 같았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그냥 재미로 기사를 읽었지만, 상당히 유용한 기사라는 생각이 들어 이번 포스팅에서 관련 기사를 리뷰해 보고자 합니다.



기사는 먼저 2010년 1월에 있었던 일을 가지고서 시작을 합니다. 거기서 '월 스트리트 저널'에 게재된 16명의 논설을 소개하면서, 이 16인이 기후학자가 아니라서 저지른 수많은오류, 실수, 허위를 지적했다는 사실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비록 지금으로 부터 5년 전의 일이기는 하지만, 아직도 '지구 온난화'에 대한 논쟁이 끝나지 않고 계속되고 있는지, 저자는 이어서 4개의 증거를 가지고 와서 '지구 온난화'가 '사실'임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조금 헷갈릴 수도 있는 것이, 방하와 빙원이 무슨 차이냐고 하실 것인데, 빙원(Ice Caps)을 여기 기사에서는 주로 북극해를 뒤덮은 얼음층을 가르키고 있었습니다. 이 북극의 얼음 뿐만아 아니라 남극 대륙의 얼음층이 녹아 내리고 있는 것도 언급하면서, 지구 온난화로 인해서 '극지방'의 얼음층이 녹아 내리는 현상에 대해서 언급을 하고 있습니다.


그럼 빙하는? 여기 기사에서는 주로 히말라야, 안데스, 알프스등 고산지대의 '만년설'을 주로 의미하면서, 이런 지역의 얼음 역시 녹아내리고 있는 것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저자인 프로세로 교수는 이러한 극지방 외의 얼음층이 녹으면서, 여기에 갇혀 있던 '온실가스'가 배출되면, 상황이 더 심각해 지는 것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이어서 기사는 '지구 온난화'를 부정하는 주장 7가지에 대해서 반박을 하면서, 이어서는 왜 이런 '지구온난화를 부정하는 주장'들이 계속 나오는 지에 대해서, 저자 나름의 분석을 내놓고 있습니다. 우선 저자의 언급에 의하면, 지구 온난화에 반대의견을 펼치는 곳은 '에너지 기업 및 시장 자유주의 옹호론자들'이 '담배 회사'들의 전략을 그대로 답습했다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이 전략은 '혼란의 연막'을 쳐서 미국의 일반 시민들이 과학적 합의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이를 위해 돈으로 비주류 과학자, 혹은 무자격자를 매수해서 이미 과학계에서 합의가 된 '지구 온난화'에 반대되는 목소리를 내면서 '혼란'을 불러 을으켰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저자가 언급하는 또 다른 '지구 온난화 반대'세력의 주장에는 '맥락을 벗어난 인용'이 있음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원래는 A라는 뜻이 아닌데, B라는 주장의 근거로 난데없이 사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이 반대자들의 수법으로는 연구팀간의 '작은 차이'를 마치 '과학계가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것으로 왜곡해서 주장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외에도 프로세로 교수는 '반 지구 온난화'진영의 논리에 어떠한 허점이 있는지를 지적하면서, 한가지 아이러니한 사실에 대해서 지적을 하고 있습니다. 2006년 부터 2007년까지 33개국에서 3만 3천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90%는 기후변화를 심각하다고 인식하였고, 80%는 인간이 기후변화의 원인임을 인식하고 있으나, 창조론과 마찬가지로 미국인만이 이를 제대로 받아 들이지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예전에 어디선가 듣기로는 미국인들 마져 '자국비하'를 하는 경우가 있다고 했는데, 한국 스켑틱의 기사만으로는 알 수 없지만, 미국에서만 유독 이런 반-기후변화 주장이 나오고, 과학적 진실이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 이유가 아마도 '공교육'이 조금 무너진 것이 원인이 아닐까 합니다. 물론 이외에도 많은 문제가 있고, 원인이 있겠지만, 우리도 잘못하면 저런 식으로 진실을 보지 못할 수 있으니 언제나 조심해야 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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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제목만 들으면 무슨 보험상품이나 파생상품같이 일종의 금융상품의 이야기인것 같기는 합니다만, 사실 '위험-수익 분석(risk-benefit analysis)'라는 것은 통계에서 사용하는 개념이라고 합니다. 저도 기초 통계학을 배운 적은 있으나, 이번 한국 스켑틱(skeptic) vol 10에 기고되어 있는 [우리가 통계를 알아야 하는 이유]란 기사에서 자세하게 설명이 되어 있기에, 이에 대해서 포스팅을 하고자 합니다.



우선 한국 스켑틱의 기사에도 나와있는 것처럼, 과거 캘리포니아에서 지진이 발생했을 때, 다시 지진이 올 가능성에 대해서 사람들이 걱정을 하였습니다. 그 때 비슷한 상황에서 지진이 다시 올 확율이 통계적으로 10%라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기사에서 나와 있는 것처럼, 대다수의 사람들은 '지진이 다시 올 것인지 여부'에 관심을 가지고 있지, 저 확율 10%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 가에 대해서는 크게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그럼 '위험-수익 분석'에서 저 10%를 어떻게 해석하느냐? 하는 의문이 드실 건데, 의외로 해답은 간단합니다. 비가 오는 경우에 대해서 비교를 하자면, 비가 올 확율이 10%라고 굳이 우산을 가지고 나가지 않아도 무방한 것처럼, 지진이 다시 일어날 확율이 10%라고 하면, 선반위에 무거운 물건 등을 내려놓고, 양동이 같은 것에 식수를 저장해 놓는 것이 좋습니다.


하지만 10%라는 가능성은 여전히 낮기 때문에 직장을 빠지거나 다른 곳으로 피난을 갈 필요까지는 없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를 좀 더 알기 쉽게 설명을 하자면, 위험도의 퍼센트에 따라 '행동을 조절'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게 결코 지진이 다시 온다, 안 온다는 예측하는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저 위험 수익 분석이란 것은 '행동을 하는데 드는 비용' 에 '위험의 크기'를 곱해서 어느정도 비용이 나오는 지에 대해서 보고서 결정을 한다고 합니다. 가령 위험에 대한 대비하는 행동에 들어가는 비용이 크다고 할 지라도 특정 위험이 일어날 확율이 높다고 하면, 비용이 많이 들더라도 하는 것이 맞다고 합니다. 하지만 위험이 일어날 확율이 낮다(여기 예시처럼 10%의 지진확율)면, 대비책의 비용이 덜 들어가는 것으로 '대체'하거나 하는 식으로 행동을 '조절'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위 그림에서 묘사한 것처럼 10%라는 지진이 다시올 가능성에 대해서 피난이나 이사를 하는 비용은 '식수 등을 준비하는 비용'에 비해서 터무니 없이 높습니다. 만약 지진이 다시 올 확율이 90%로 높다면, 피난이나 이사를 가는 편이 좋을 지는 모르지만, 10%라면 10%에 어울리는 대비를 하는 것이 좋다는 말이 됩니다.



한국 스켑틱에 올라온 또 다른 사례로는 17세기 보스턴에서 천연두 예방을 위해서 '인두법-천연두를 가볍게 앓는 사람의 통포를 백신처럼 아직 면역이 없는 사람에게 투여하는 방법'을 쓰자, 위 그림처럼 41명중에 1명이 인두법의 부작용으로 사망하였습니다. 이 경우에는 1/41이라는 확율로 인두법이 위험도가 있는데,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정답이냐 하는 물음에 다음과 같은 해답이 제시되었습니다.


일단 천연두 자체는 치사율이 상당히 높은 질병입니다. 그래서 전염병이 유행을 하는 상황이라면, 저 1/41이라는 치사율은 상당히 낮아서 '인두법'으로 예방접종을 맞는 것이 좋습니다. 하지만 천연두가 유행하지 않고, 이 천연두의 발병 가능성이 거의 없다면, '인두법'의 1/41 치사율은 너무나 높은 것이 되어 버립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어느 쪽이 확실하다고 할 수는 없어 보입니다. 아무리 위험이 일어날 확율이 1%라고 해도 일어날 때는 일어나는 재수없는 상황이 얼만든지 벌어질 수는 있습니다. 다만 이 '위험-수익 분석'이 알려주는 것은, 위험이 90%라고 하면 그에 맞는 대비를 하고, 위험이 10%라면 그에 맞추어서 대비 수준을 낮추어서 조절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려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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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공수래공수거 2017.07.24 10:20 신고

    예전에 분석 기법이 있어 자주 사용하곤 했는데 지금은
    다 잊어 버렸습니다 ㅋ
    결론적으로 말해 주신게 맞는것 같습니다^^

안녕하세요?


한극 스켑틱 2017년 vol9에 싣려 있는 기사인 [초광속 비행은 가능한가?]라는 기사를 읽어보니, 우리가 SF 영화나 소설, 만화등에서 심심하면.... 정확히는 스페이스 오페라 라고 해야 할까요? 아무튼 우주를 배경으로 하면 항상 언급이 되는 워프 드라이브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이 되어 있어서, 그 내용을 포스팅 하고자 합니다.


우선 질량이 있는 물체는 빛의 속도를 넘을 수 없다는 것이 특수 상대성 이론의 명제라고 기사에서는 언급하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빛의 속도로 우주를 여행하는 것 마져도 너무 느리다고 언급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류가 진짜로 우주를 여행하기 위해서는 빛의 속도보다 더 빠른 속도로 행성과 행성사이를 이동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합니다.


앞서서 특수 상대성 이론에서 물체는 빛의 속도 이상은 낼 수 없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광속 이상의 속도로 우주를 여행하기 위한 이론적 기반이 바로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이라고 합니다. 일반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중력은 두 물체 사이에 서로 잡아당기는 힘-인력이 작용해서가 아니라 시공간의 휘어짐이라고 설명을 합니다.


이해가 어렵기는 하지만, 이게 왜 워프 드라이브의 이론적인 기초가 되느냐 하면, 아래의 그림에서 보시는 것처럼 중력을 이용해서 공간의 휘어짐을 이용하면 초광속으로 우주를 여행하는 방법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정리하자면 상대성 이론에서 물체는 빛의 속도에 도달하거나 그 이상의 속도는 낼 수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공간이 휘어지는 속도는 제한이 없기 때문에 무한히 빠른 속도로 공간을 수축하거나 팽창할 수 있다고 합니다. 위 그림에서는 우주선의 앞쪽 공간은 중력을 증가 시켜서 수축시키고, 우주선 뒤의 공간은 중력을 감소시켜서 공간을 팽창 시킨다고 합니다. 그러면 우주선은 앞으로 가고자 하는 공간이 수축되어서 이동해야 하는 거리가 줄어들고, 결과적으로 빛 보다 빠른 속도로 우주여행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잘 이해가 안 가시리라 생각을 해서, 위 그림처럼 자동차가 이동하는 거리에 비유를 했습니다. 우선 자동차가 그냥 1000킬로미터 밖의 목표지점으로 가고자 하면, 시속 40km/h로 달릴 경우 25시간이 걸리게 됩니다. 하지만 중력을 이용해서 1000킬로미터의 거리를 수축-그림처럼 접었다고 해야 할까요? 접어서 1킬로미터의 거리로 줄이면, 목표지점까지 같은 시속 40km의 속도로 움직여서 25분만에 목표지점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이런 워프 드라이브는 처음에는 <스타트랙>시리즈의 작가들이 상상력을 동원해서 만들어낸 설정일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실제 이론적으로 가능한가 여부는 멕시코의 물리학자 미구엘 알큐비에르(Miguel Alcubierre)가 밝혀냈다고 합니다. 


알큐비에르는 실제로 첫번째 그림과 같이 우주선의 앞쪽 공간을 수축시키면서 뒷쪽 공간을 팽창 시킴으로서, 우주선에 타고 있는 사람들이 아무런 가속을 못 느끼는 와중에 이동하게 된다고 주장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앞쪽이 수축하고 뒤쪽이 팽창해서 균형이 맞추어진 공간을 '워프거품(Warp Bubble)'이라고 부르며, 워프 드라이브의 구체적인 방법을 알큐비에르가 제시 했다고 해서 '알큐비에르 드라이브'라고도 불린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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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지난번 포스팅에서 [정치가는 어떻게 시민을 속이는가?]라는 한국 스켑틱(Skeptic)의 기사를 읽고나서, 주로 정치인이 사용하는 속임수 2가지를 소개했습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나머지 3가지 속임수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자 그럼 여러분은 어떻게 정치인이 한마디의 거짓말도 하지 않고서 사람을 속이는 지를 보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세번째 방법은 공포감 조성이라고 합니다.


저자는 이게 왜 문제가 되는지를 소개하면서 뇌에서 일어나는 활동과 관련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선 두려움이라는 감정은 두뇌의 편도체(amygdala)에서 처리가 되는데, 이 부위가 자극되면 자기억제 및 복합적 사고와 관련되는 전전두피질(Prefrontal Cortex)의 활동이 억제 된다고 합니다.


인간의 뇌가 이렇게 되면, '생각하고, 결정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상당히 약화될 수 있다고 저자는 언급을 하고 있는데, 저자는 미국 정치판에서 이런 공포감을 조성하는 방법이 어떻게 사용이 되고 있는 지를 다음과 같은 예시를 들어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우선 실제 미국의 대통령 선거에서 공포감을 조장한 광고 하나를 보여 드리겠습니다.



위 광고는 1964년에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가 당선되면 핵전쟁에 의해 파멸이 될 것이라는 내용을 암시하고 만든 광고라고 합니다. 실제로 공화당 후보가 핵전쟁을 일으킨다고 보장을 못 하지만, 사람들에게 상대 후보에 대한 공포심을 불러 일으켜서 판단력을 흐리게 하였다고 합니다. 기사에서 언급되기를 위 광고는 단 한번만 방송이 되었지만, 그 효과는 심각하였다고 합니다.


근래에는 멀리 갈 것도 없이 2011년에도 이러한 전략으로 사람들의 판단력을 흐리게 하였던 적이 미국에선 일어났다고 합니다.



위 광고는 폴 라이언(Paul Ryan)하원의원이 노인 의료보험제도를 개혁하고자 하는 움직임에 대해서 공포감을 조성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작이 된 광고라고 합니다. 실제로 폴 라이언 하원의원이 발의한 개혁안은 당시 나이가 55세 이상인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영향이 없었지만, 이 광고는 실제 노인층이 공포를 느껴 개혁안에 반대를 던지게 하는 목적으로 제작이 되었습니다.


물론 이 사례도 거짓말을 한 것은 전혀 없습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공포감을 조장해서 사람들의 판단력을 흐리게 하고, 정치인이 자기 의도대로 사람들을 속여서 움직이게 하는 수법에 대해서 저자는 영국의 시인 새뮤얼 테일러 콜리지(Samuel Taylor Coleridge)의 말을 빌려서 우려를 표하고 있습니다.


[정치에서 두려움으로 시작된 것은 바보짓으로 끝나는 것이 보통이다.]


네번째 수법은 일화(Anecdotes)라고 합니다.


본격적인 이야기에 들어가기 앞서서, '일화'와 '증거'가 다르다는 것을 것을 먼저 언급해야 겠습니다. 저자는 '증거'라는 것을 '어떤 믿음이나 명제가 타당한지 밝히는 사실의 집합'이라고 정의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특정한 사건'을 의미하는 '일화'라는 것은 증거가 될 수 없다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말로만 늘어놔서는 이해가 어려우리라 생각이 드므로, 다음의 그림을 보시면 이해가 쉬우리라 생각이 듭니다.



위 그림에서 동그라미 안에 들어간 A와 B는 특정한 사실을 하나 의미합니다. 단순히 A라는 사건이 하나 일어난 것만 가지고는 일화라고 할만하지, 결단컨데 B처럼 사실이 모여서 집합을 이룬 증거와는 다르다는 것을 의미하는 그림입니다. 물론 여기서 A가 여러번 많이 일어난다면 증거가 될 수 있지만, 겨우 한번 일어난 사건을 가지고서 모두가 A다 라고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정치인이 사람들을 속인 사례가 다음과 같습니다.



오바마 케어에 대해서 찬성측과 반대하는 측 모두, 미국 내에서 '일화'를 가지고서 다름과 같이 사람들을 속였다고 합니다. 찬성하는 측에서는 오바마 케어 덕분에 난소암을 치료한 '펜실베니아 주의 바텐더'이야기나, 반대측에서 가지고 온 '650달러에서 1300달러로 월간 보험료가 2배 오른 한 주민'이야기를 가지고 왔습니다. 양측다 자신들이 가지고 온 '일화'를 들먹이면서 전체가 '일화'와 같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몇 가지의 사례만 가지고서 전체가 모두 '일화'처럼 같이 되리라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저자는 언급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한 가지 사건을 가지고서 사람들을 속이는 수법은 미국만이 아니라 전 세계 어디에서든 유용하게 사용이 되는 속임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마지막 다섯번째는 완곡어법(Euphemism)과 위악어법(Dysphemism)이라고 합니다.


우선 완곡어법이라는 것에 대해서 정의를 해서 넘어가야 할듯 합니다. 완곡어법이란 [불쾌한 대상을 언급할 때 너무 거칠거나 직설적이라고 생각되는 말 대신에 사용되는 부드럽거나 간접적인 용어 및 표현]이라고 합니다. 이런 식으로 사람들을 속인 사례는 다음과 같다고 합니다.



우선 미국 헌법부터 노예라고 심각한 문제를 바꾸어서 [다른 사람들]이라는 식으로 말해서 문제가 그다지 심각하지 않은 것처럼 넘어가고 있다고 저자는 말을 합니다. 나치의 유대인 말살정책도 사람들이 당장 들어서는 무슨 말인지 전혀 모르는 [최종 해결책]이라는 식으로 돌려 표현하는 것으로 사람들이 별로 심각하지 않다고 생각하게 만듧니다.


전쟁에서 우발적으로 민간인이 죽거나 다치는 일은 정말 심각한 일입니다. 하지만 이를 [부수적 피해]라고 해서 애매모호하고 둘러서 표현하는 말을 사용함으로써, 정치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심각한 일이 일어나는 지를 가리는 효과를 보고 있습니다. 정말로 거짓말을 하지 않고, 완곡한 표현만 써서 이렇게 사람들을 속이는 수법이 있다고 합니다.


반대로 위악어법은 [긍정적이거나 중립적인 용어대신 경멸적이거나 불쾌한 용어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대표적으로 미국에서 정치인이 사람들을 속인 사례로 저자는 '사망세(death tax)'라는 것을 사용한 사례를 하나 들고 있습니다.



우선 사망세란 사실 상속세를 다른 식으로 부른 말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에게는 저렇게 '사망세'라고 이름을 붙임으로써, 부자들이 자녀에게 재산을 물려줄 때 매기는 세금이 아니라, 사람이 죽으면 자녀에게 물리는 세금이라는 뉘앙스를 일부러 주고 있습니다. 물론 거짓말은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미국의 상위 1.3%의 부자들이 죽으면 나올 세금이라는 상속세를 이상하게 사망세란 이름으로 부른 것 만으로, 정치인은 사람들을 속이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지난번 포스팅에서도 언급을 하였지만, 저자가 미국사람이기 때문에 미국의 정치에서 정치인이 거짓말을 하지 않고도 사람들을 속이는 방법을 소개했지만, 대한미국의 정치에도 정치인이 사람들을 속이는데 너무나도 유용한 수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세번째 공포심 조장의 경우에는 특별히 언급은 하지 않겠지만, 사용이 빈번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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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시간에는 자연과학과는 거리가 먼 사회과학과 관련이 있는 내용을 3부분으로 나누어서 포스팅을 하고자 합니다. 기사는 한국 스켑틱(Skeptic) vol9에 싣려 있었는 [정치가는 어떻게 시민을 속이는가?]라는 기사를 읽고서, 이 내용은 너무나도 유용하고 민주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는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포스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먼저 이 기사를 쓴 저자인 티머시 레드먼드(Timothy J.Redmond)에 대한 소개부터 들어가 보겠습니다. 저자는 뉴욕 버팔로 주립대에서 정치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으로 대먼 컬리지(Daemon Collage)에서 연구교수로 재직중인 사람이라고 합니다. 제목만 보면 정치인에 한정되는 것 같지만, 저자가 쓴 기사를 보면 거짓말을 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사람들을 속이는 지 그 방법을 크게 5가지로 나누어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그 첫번째는 애매한 비교라고 합니다.



위 그림의 이미지처럼 비교를 하기는 하는데, '더 많이', '더 적게', '더 좋은' 같이 두개의 대상을 비교하는 용어를 강조하듯이 쓰면서, 정작 무엇과 무엇을 정확하게 비교하고 있는지를 제대로 설명하지 않는 방법으로 정치인 혹은 정치가가 시민을 속이는 수법을 저자는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 예로서는 다음과 같은 사례를 들고 있습니다.



먼저 진실을 이야기 하도록 하겠습니다. 미국은 1942년에 수돗물에 대한 최대 허용 비소 수치를 50ppb라고 해서 10억분의 1만 허용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클린턴 행정부에서는 이 50ppb라는 수치가 여전히 높다고 생각을 했는지, 2006년 부터는 수돗물에 비소가 허용되는 양을 10ppb로 낮추기로 했습니다.


문제는 부시 행정부가 10ppb까지 허용량을 낮추는 것은 과하다고 생각을 했는지 2001년 대선공약에서 20ppb로 기준을 높여서 2006년에 시행을 하자고 주장을 하였습니다. 클린턴 행정부가 2006년 부터 지정하도록 하였는 10ppb보다는 높은 기준이기는 했지만, 1942년 수돗물에 허용되는 비소의 양인 50ppb에 비해서 여전히 적은 양입니다.


그럼 어떻게 미국 민주당이 부시 행정부의 정책을 왜곡시켰는가 보면, 다음과 같이 한마디의 거짓말도 하지 않고서 사람들을 속이는 것을 보여줍니다.



먼저 부시가 수돗물에 허용되는 비소의 양을 늘렸다는 것을 매우 강조합니다. 그러면서 그 늘어난 양이 얼마나 늘어났으며, 1942년에 지정된 50ppb인지, 아직 시행되지도 않은 클린턴 행정부가 지정한 10ppb에 비해서 인지 한마디의 언급도 없었습니다.


정말로 민주당은 부시가 '더 많은 비소양의 허용했다' 라는 것만 계속해서 강조해서, 사람들로 하여금 지금 현재 수돗물에 허용되는 비소의 양보다 더 많은 양의 비소를 부시가 넣으려 한다. 라는 식으로 생각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 방법을 다시금 정리하자면, 민주당은 '더 많은'을 계속 강조만 했을 뿐, 부시가 '현재 비소 허용량보다 더 많은 비소를 허용했다.' 라고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런 내막을 잘 모르는 사람들로 하여금 '더 많은' 단어만 강조해서 착각하는 것을 유도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두번째로 정치인이 사람들을 속이는 방법은 평균을 사용하는 방법이라고 합니다.


우선 본격적으로 들어가기 전에, 평균이라는 단어는 통계에서 평균값(Mean)과 중앙값(Median)이라는 값이 있다는 것을 설명해야 할 필요성이 있어 보입니다. 평균값(Mean)과 중앙값(Median)은 다음과 같이 차이가 있습니다.



위 그림을 보시면 알 수 있듯이 평균값(Mean)과 중앙값(Median), 둘 다 다른 액수의 금액이 나옵니다. 하지만 이 두개의 단어는 애매하게 [평균]이라는 이름으로 쓸 수 있습니다. 이런 평균값과 중앙값이 다르다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바로 헷갈리기 쉬운 두 개의 단어를 가지고서 정치인은 사람들을 속이는 데 쓸 수 있다고 합니다.


우선 위 그림에서 보이는 5가구의 일년간 총 수입을 평균값(Mean)을 써서 정치인은 자기가 5가구를 부유하게 만들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정치인은 중앙값(Median)을 인용해서 5가구가 있는 지역이 그다지 부유한 지역이 아니라고 사람들에게 말할 수 있습니다.


복잡하기는 하지만, 통계에서 [평균]이라는 단어가 실제로 집단 전체를 대표한다고 볼 수 없는 상황이 나옵니다. 이런 경우는 통계에서 말하는 [이상치]라는 수치가 있습니다. 다른 집단의 구성원들이 지니는 값에 비해서 이상하리 만큼 크거나 작은 값을 이상치라고 하는데, 이런 이상치가 제대로 집단을 대표하는 값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왜곡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평균이 실제로 집단을 대표한다고 해도 평균값(Mean)과 중앙값(Median)을 가지고서 사실을 왜곡할 수 있습니다. 거기다가 이상치라는 것이 있으면 처음부터 집단을 제대로 대표할 수 있지도 못합니다. 정치인은 평균이라는 단어를 저런 식으로 왜곡해서 사용, 거짓말을 단 한마디도 하지 않고도 사실을 왜곡해서 사람들을 속일 수 있다고 합니다.


일단 저자가 제시한 2가지 방법만 해도, 충분히 정치인이 거짓말을 단 한마디도 하지 않고서 사람들을 속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례는 주로 미국 정치에서 나오기는 했지만, 이 방법들은 한국의 상황에서도 충분히 사용이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며, 오늘날을 사는 사람들이 알아야 할 필요성은 있다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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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포스팅은 한국 스켑틱(Skeptic) vol9에 나와 있었는 [노화를 막을 수 있을까?]라는 기사를 읽고나서, 오늘날과 같이 상업적으로 무분별하게 무엇이든 범람하는 시대에는 꼭 필요하다는 기사를 읽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 내용에 대해서 포스팅을 하고자 합니다.


일단 기사에서는 노화를 막는 항노화 치료법을 6가지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각각의 치료법은 다음과 같은 순서로 소개가 되었습니다.


1번 항산화제

2번 호르몬치료

3번 보충제 혼합제제

4번 레스베라트롤

5번 열량제한

6번 텔로미어


각각의 치료법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이 기사의 중심내용이 아니기는 하기에, 이번 포스팅에서는 깊이 있게 다루지는 않겠습니다. 하지만 각각의 치료법이 일단 인간에게 제대로 효과를 내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우선 항산화제의 경우에는 암을 비롯한 다른 질병에 걸릴 위험을 낮추는데 도움이 될 수 있지만, 항산화제를 먹는다고 해서 노화가 늦추어 진다는 연구결과는 아직 없다고 기사에서는 언급을 하고 있습니다.


호르몬치료의 경우에는 질병을 치료하는 목적이지, 기사에서는 노화를 막는 목적이 아니라고 언급을 하면서 호르몬의 부족으로 인해서 노화가 촉진되는 질병에는 효과가 있을 지는 몰라도, 일반적인 노화를 막는 효과는 없다고 언급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보충제 혼합제제는 Seanol Longevity Plus와 같은 제품이 있기는 하지만 아직 임상실험 결과가 없다는 사실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레스베라트롤은 적포도주에서 발견된 성분으로 DNA손상을 복구하는 단백질인 시르투인(Sirtuin)을 활성화 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에게 적용할 경우 레스베라트롤이 효과를 보려면 하루 80알을 보충제로 먹어야만 할 정도로, 막대한 양이 필요하며, 열량제한의 경우 지금까지 실험동물에게 적용한 것을 그대로 사람에게 적용하기에는, 인간이 감당해야 할 고통이 너무 크기에 무리라는 것 또한 기사에서 언급되어 있습니다.


다만 열량제한이 어떻게 수명을 연장시키는지 그 기작-메커니즘을 연구하는 해서 사람에게 적용하는 것은 충분히 가치가 있을 것이라는 것을 기사에서 언급이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텔로미어의 경우에는 예전에 읽었던 [빌 앤드루스의 텔로미어의 과학]이라는 책의 내용과 다소 정 반대되는 입장을 밝히고 있었습니다.


일단 100% 텔로미어가 노화와 관련이 없다라는 주장을 기사에서는 하지 않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저자는 그렇게 까지 텔로미어를 가지고서 노화를 치료한다거나 늦춘다고 확신을 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기사는 다음과 같은 문구를 꺼내고 있습니다.


[진실과 대면하자]



이게 무슨 말인고 하니, 저자인 해리엇 홀(Harriet Hall)은 가정의학의로서 대체의학, 의사과학, 사기 의료 행위에 대해 비판적인 글을 쓴 사람입니다. 즉,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지금 시중에 나와있는 노화방지니 노화를 되돌린다고 말하는 상품들을 심하게 말하면 [사기]라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계속 연구하면 언젠가는 미래에 노화를 극복할 수 있는 약이나 치료법이 나올 수는 있지만, 지금 2017년 현재의 시점에서는 아직까지 노화를 치료하는 방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런 상품에 돈을 쓰지 말자-구매해서 사용하는 것을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기사는 주장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제 생각도 아직까지 노화를 늦추거나 되돌리거나 하는 것은 초기단계에 지나지 않을 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근 미래에는 이런 치료법이 착각이거나 거짓말일 수 있으니 전혀 소비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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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포스팅은 한국 스켑틱(Skeptic) vol. 2에 나와있는 [오랫동안 고문하면 데이터도 결국 자백한다-통계, 보고 싶은 것만 보여주는 기술]이라는 기사를 읽고서, 여기서 몇 가지 유용한 것이 있어서, 이것들을 소개하기 위해서 포스팅을 작성해 보았습니다.


우선 기사는 먼저 서문에서 연구자들은 종종 좋은 데이터와 쓸모없는 데이터, 적절한 과학적 분석과 엉터리 과학을 구별하는데 소홀히 해서, 결과가 왜곡되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예시를 3가지 드는 것이 이 기사의 전부이지만, 이 3가지는 연구자이든 일반인이든 알아 두어야 할 가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번째 사례는 논문의 제목인 [바스커빌의 사냥개효과]라는 연구자료를 언급하면서 시작을 합니다. 이 연구의 내용은 간단합니다. 매달 4일에 일본계 및 중국계 미국인이 심장마비를 일으킬 확율이 높다는 이야기입니다. 당연 이 이야기가 말이 안되기는 하는데, 여기서 연구자들이 어떻게 했길래 통계상으로 이런 결과가 나왔는가 하면, 바로 1989~1998년 사이의 데이터만을 사용해서 이런 결과를 얻었다고 합니다.


동일한 심장질환에 대해서 1969~1988년과 1999~2001년의 연구결과를 보면, 매달 4일과 심장질환 발병과는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다는 것이 나왔습니다. 이와같은 오류가 발생한 이유는 간단하게도, 원하는 데이터만 취사선택했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생겼다고 합니다. 실제로 다1989~1998년 이외의 년도에 발생한 데이터를 다 종합하면 이런 오류는 사라진다고 합니다.


두번째 사례는 좀더 어이가 없을 수도 있는데, 1,435개의 기업을 조사해서 11개의 성공적인 기업이 40년간 생존했고, 크게 성공했다는 것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 11개 기업의 특징을 조사한 연구 결과가 짐 콜린스와 그의 연구팀이 냈는데, 여기서 나온 오류는 어이없게도 다음과 같다고 합니다.


파인만의 함정이라는 것으로 제대로 된 연구라면 40년 전에 기업을 선정해서 40년간 꾸준히 관찰해야 하지, 이렇게 이미 일어난 다음에는 일어날 가능성이 매우 희박한 확율도 사실상 100%가 된다는 것입니다. 즉, 어떤 일이 일어나기 전에 대상을 선정해야 하지, 이미 일어난 다음에 대상을 선정해서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소리입니다.


다음 마지막 3번째 사례로는 송전탑 전파가 암을 유발한다는 연구결과를 가지고 발생한 통계적인 오류에 관해서입니다. 일단 이 연구에서는 암환자가 발생한 부근에 송전탑이 있었으니, 송전탑의 전파가 암을 유발한다는 가설을 세웠는데, 실상은 송전탑과 암의 발생에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럼 여기서 일어난 통계적인 오류는 무엇인고 하니, 바로 텍사스 명사수의 오류라고 합니다. 즉 표적을 세우고 나서 사격을 하는 것이 아니라, 헛간의 벽에다가 마우 사격을 한 다음, 탄착군이 밀집된 곳에다가 표적을 그리고, 나머지 총알구멍은 막아버려서 지우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오류를 방지하려면, 먼저 암 발생을 모르는 상황에서 전자기장 노출도-송전탑과 같은 물체의 영향-를 측정해야 한다고 합니다. 즉, 이미 암 발생 여부를 측정하고 나서, 유별나게 암 발생빈도가 높은 지역에다가 송전탑이 있는 것을 찾아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기사를 보면 이런 오류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먼저 송전탑이 발생시키는 전자기장을 모르는 상태에서 암 발생빈도를 측정하고, 그 다음에는 암 발생빈도를 모르는 상태에서 전자기장을 측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실제 이 송전탑이 암을 유발한다는 주장의 가장 큰 오류는 다음과 같습니다.


[송전탑이 없는데도 암 발생빈도가 생긴 지역은 왜 데이터 설명에서 뺐는가?]


이 3가지 경우를 봤는데, 중요한 것은 세가지 오류 모두 연구자가 일으키기 쉬운 오류라는 겁니다. 실제로 마지막 텍사스 명사수의 오류와 같은 경우는, 데이터를 자기 유리한 데로 해석하는 전형적인 오류인데, 말 그대로 보고 싶은 것만 보게 되는 현상이라고 보시면 될 듯 합니다. 


결국 마지막 스켑틱에 싣려있는 이 글이 정답인듯 합니다.


[통계 자료에는 쉽게 납득할 수 있는 부분도 있는 반면 한번 의심해봐야 하는 부분도 있다. 그 연구가 특정한 패턴에 맞추려고 특정 데이터만 추출한다거나 맞지 않는 데이터는 조작하고 배제하는 것은 아닌지 항상 주의해서 살펴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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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포스팅은 한국 스켑틱(Skeptic) vol.6에 수록된 [비디오 게임이 살인바를 만드는가-폭력적인 비디오 게임과 범죄의 상관관계]라는 기사를 읽고서, 여러분에게 상당히 유용하고 이익이 될만한 내용이 있어서 포스팅을 하고자 합니다.


기사는 처음에는 미국에서 일어난 총기난사 사건을 언급하면서 시작을 합니다. 이 사건이 일어나자 미국이라고 해서 다를 것도 없이 폭력적인 비디오 게임이 원인이라고 지목하는 일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그것을 이 기사에서는 [왜곡된 믿음]이라고 하면서 오히려 비디오 게임이 주는 긍정적인 효과를 기사는 언급하고 있습니다.



기사에서 언급하는 한 연구는 게임을 하면-특히 슈팅게임을 하면 사람들의 평균적인 공각지각 능력이 눈에 띄게 개선이 되었고, 게임에 능숙해지면서 이런 능력이 더욱 강화되었다는 사실을 이야기 합니다. 또한 또 다른 연구에서는 비디오 게임이 신경 처리 속도와 효율성을 현저하게 향상시킨다는 결과 또한 언급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당순히 게임이 두뇌의 능력향상에만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라, 감정에 주는 긍정적인 영향 또한 소개하고 있습니다. 기사에서는 일정시간 달리기를 하면 찾아온다는 '러닝하이'라는 쾌감과 비슷하게 '몰입Flow'라는 현상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이 몰입이 청소년의 고등학교 학업 성적을 올리고, 자긍심을 높이고, 불안 수준을 낮추는 등 긍정적인 효과를 준다는 결과가 적지 않다는 사실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럼 왜 이런 긍정적인 영향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비디오 게임이 폭력사건의 원인으로 지목이 되는 것일까요? 그 원인에 대해서 기사는 [도덕적 공황이론]이라는 이론을 가지고서 어느 정도 해명을 하고 있습니다. 이 이론에 따르면 처음 보는 생소한 매체가 등장하면 사회 일각에서는 부정적인 선입견을 연료 삼아 그런 매체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는 경향이 나타난다고 합니다.


이미 1940년대에 미국에선 TV가, 1950년대에는 만화책, 수십년 전에는 심지어 엘비스 프레슬리까지도 이런 논란에 서 있었다고 합니다. 기사는 이러한 사실을 언급하면서 더 나아가서는 비디오 게임이 폭력을 조장한다는 것이 얼마나 허황된 주장인지를 증명하기 위해서 1996년부터 2011년이라는 15년간 비디오 게임 판매량과 청소년 폭력범죄 비율을 대조한 결과, 비디오 게임의 소비가 늘어날 수록 청소년 폭력은 오히려 감소하고 있다고 합니다.



기사는 그럼 비디오 게임이 문제가 아니라 어디가 문제냐고 하자, 바로 미국에서 만연한 총기소지가 문제라는 것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기사에서 언급하기를 총기 소지가 불법이고 비디오 게임의 판매량이 더 많은 네덜란드나 일본, 한국같은 나라에서는 오히려 미국보다 살인사건 발생율이 현저히 낮다는 사실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실제 미국내에 총기소지는 너무 자유로워서, 술, 담배, 복권을 구입할 수 없는  아이도 소총은 구입할 수 있는 나라가 미국인 것을 생각해 보면, 비디오 게임이 문제가 아니라 총기가 문제라는 것을 언급하면서 기사는 마무리를 짓고 있습니다. 


이 기사는 미국의 사정에 맞추어져서 씌여져서 국내에는 적용이 힘들꺼라고 언뜻 보면 생각할 수 있으나, 게임을 무슨 중독인 것처럼 해서 법을 만들려 하는 상황이 얼마전까지 있었고, 언제라도 이런 상황이 다시금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이라는 것을 생각해 본다면, 위에서 언급한 게임의 긍정적인 면을 이야기하면서, 게임을 희생양 삼아서 본질적인 문제를 덮으려는 시도를 막아야 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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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스켑틱(Skeptic) vol6.에 나온 [사진은 당신의 기억을 지운다]를 읽고서, 유용해 보이는 정보가 있기에 이를 소개하고자 포스팅을 합니다.


우선 기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언급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합니다. 2012년 한 해에만 9천억장 이상의 사진이 찍혔다는 통계결과가 있으며, 페이스북에는 날마다 3억 장의 사진이 올라온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사진을 찍는 행동이 기억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는 지 실험을 하면서 [사진사의 기억상실]이라는 현상이 나온다고 합니다.


이 '사진사의 기억상실'은 다음과 같은 실험을 통해서 밝혀졌다고 합니다. 실험의 내용은 간단하게도 미술관에 피 실험자들을 데리고 가서 30점의 미술작품을 감상하게 했습니다.


그중에 15점은 그냥 감상만을 하도록 했고, 나머지 15점은 사진을 찍도록 했다고 합니다. 그 다음 피실험자들이 관람하지 않은 10점의 작품을 포함해서 30개의 작품에 대해서 인식 테스트를 했다고 합니다.


피실험자들은 이 작품의 이름은 무엇이며, 관람한 적이 있는지 없는지와 사진을 찍은 적이 있는지 없는지를 테스트에서 대답해야 했다고 합니다. 


또 모든 피실험자들은 각 작품이 지닌 세세한 특징을 묻는 객관식 실험을 치러야 했다고 합니다. 


이 실험결과 피실험자들은 사진을 찍은 작품을 덜 정확하게 기억했다고 합니다. 이 처럼 사진을 찍을 때, 사진찍는 물체에 대해서 세세한 기억력이 떨어지는 현상을 [사진사의 기억상실]이라고 합니다.


기사에서는 이 사진사의 기억상실을 예방하는 방법으로 제시가 된 것이 무척이나 간단했습니다. 사진을 찍을 때 셔터만을 누르지 말고 먼저 생각하고 나서 촛점을 맞추고 줌을 당기는 방법이라고 합니다. 어찌보면 말도 안되는 것 같기도 하지만, 이 사실역시 실험으로 증명이 되었다고 합니다.


두번째 실험에서 실험 참가자들은 미술작품의 사진을 찍을 때 특정 부분을 확대해서 찍도록 요구받았다고 합니다. 이 처럼 특정 부위에 대해서 관찰을 하면서 사진을 찍은 이후 피실험자들의 기억은 작품을 단순히 감상했을 때와 같았다고 합니다. 즉, 생각없이 사진만 찍어서는 사람 머릿속에 기억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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